이 책은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출산율 등)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것은 다양성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번영이라는 측면에서 다양성을 단순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려운 다양성을 보다 통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한 대화의 시작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본다.
책의 내용으로 첫 번째는 "인종의 허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종은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니다. 생물학적 인종 개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은 마치 '지구가 평평하다'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고 시대착오적이다. 인종적 신념이 얼마나 뿌리 박혀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떤 인종인지 파악이 가능하며(몇 퍼센트 몇 퍼센트의 인종인지 결과가 나온다) 검사 결과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일 인종보다는 상당수가 혼혈로 조사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이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인종의 개념을 접근해야 한다. 그러면 인종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과학적 개념이 아닌 인종은 사회적 의미는 있지 않을까? 사회적으로 인종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작가가 서술하고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는 학자들의 순수한 분류가 분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이인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차이에 인간이 의도적으로 위계를 부여하는 것이 문제다. 인간이 자연과 사회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차이에 의도적으로 위계를 부여하는 순간 차이가 차별을 낳고, 불공정과 불합리함이 발생하며 폭력과 학대로 이어질 위험성이 생겨난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 지배한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차별이 곧 평등'이라는 논리가 있다. 이는 '문명이 발달한 유럽인과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비 유럽인, 즉 아시아인, 아프리카인을 어떻게 유럽인과 동등하게 대하느냐, 다른 것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라는 논리다. 우리가 '차이'를 보는 동시에 차이 뒤에 숨어 있는 위계, 즉 '줄 세우기'를 날카롭게 간파하고 냉철히 비판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차이를 두고 얘기할 수 있지만, 차이의 위계를 두기 시작하면서 차별의 논리로 흘러가버린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의 신화는 근대 유럽의 백인 연구자들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시로 백인 우월성 증명을 위한 연구들로 칼 폰 린네의 '호모 사피엔스'와 피부색 분류,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의 인종 분류(코카서스, 몽골, 에티오피아, 아메리카, 말레이) 그리고 요한 요아힘 빙켈만의 백인 우월주의, 유색인종과의 결혼 금지를 주장한 극단주의자인 매디슨 그랜트가 있다. 한편으로, 인종은 허구적 개념인데 인종차별을 철폐하자라는 의견에서 인종이 차별의 논리로 사용되기 때문에, 차별에 대항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Black Lives Matter, 인종 차별과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흑인 인권 운동인 BLM운동 같은 경우도 그렇고 우리 나라안에서도 심각한 인종차별에 직면해 있다. 일단은 인종은 허구임을 인지하고 타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되 인종 차별적 논리를 최소화함에 노력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는 50만 명이 넘는 한국 사회의 이주 노동자가 있다. 이 숫자는 앞으로도 더 증가할 것이며 인구가 감소하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과 함께 사는 사회 일반화 될 것이다. 다가올 사회에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인종 차별 비판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로 이제 인구문제에 대한 주제로 넘어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2023년부터 2033년까지 향후 10년 동안 일하고 소비하는 25~59세 인구가 크게 감소하여 2023년 부산시 인구인 330만 명과 맞먹는 327만 명 정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데 있다. 2023년부터 2030년까지 감소세가 계속되어 2023년 대구시 인구수(235만)에 가까운 207만 명이 감소하고, 이후 4년 만에 대전시 인구만큼(147만) 또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빠르고 심각한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는 문제임을 인지할 수 있고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계층이 감소하고 이는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문제로 이어지며 일하는 계층 감소로 야기되는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저자가 인구문제 챕터에서 주목하는 부분 강력한 이동성과 개방적 문화의 시대가 도래한 잘 파세대로 Z세대와 알파 세대를 합친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잘 파세데를 새로운 시대의 주제로 잘 성장시켜야 한다고 얘기하며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향후 인구 절벽 때문이 아니라 미래의 주역이 될 잘 파세대가 가진 속성, 즉 글로벌한 특징으로 인해 장차 이동과 이주가 더욱더 활발하게 일어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다양성은 비약적으로 커지고 역동적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에는 국가 간 문화의 '동질성'과 '동시간성'이 비약적으로 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동질성'과 '동시간성'이 역설적으로 한 나라 안에서의 다양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킴으로써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사회로 진입하게 할 것이다."
세 번째로 다양성과 공감 그리고 행복에 대한 주제이다. 다양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다루며 다양성이 핵심적인 가치를 추동하는 부분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듣자 다양성의 가장 중요한 엔진, 좀 더 구체적으로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심리 엔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것은 바로 '인지적 공감'이다. 인지적 공감은 인간만이 가진 추론 능력으로 매우 높은 차원의 공감이다. 이는 내가 지금 힘든 상황에 놓인 게 아닌데도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며 '얼마나 힘들까' 미루어 생각하며 판단하는 것이다. 이를 사자성어로 '역지사지'라고 하며 입장을 바꾸어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것인데, '인지적 공감'은 이런 태도와 행위의 연장선에서 생겨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지적 공감이지, 강점적 공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성 증대의 핵심은 '인지적 공감'이라는 것이다. 감정적 공감처럼 1차 반응이 아닌 '시스템 1'인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부분이면 '시스템 2'는 고차적인 능력을 수행하는 계획, 수행하는 부분이며 타인의 감정을 느끼며 예측하는 것이며 인지적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떻게 '시스템 2'를 사용할 수 있을까? 인지적 공감, 보편적 윤리와 가치에 대한 교육으로 사회 전체적인 교육이 중요하며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해내야 하기에 시스템 발전을 위한 사회 전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성과 공감 그리고 행복에 대한 주제에 이어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자. 한국사회는 다양성을 얼마나 포용하며 행복을 추구하는가? 우리나라는 그것보다는 동질적이고 경쟁적인 사회로 볼 수 있다. 작자의 말로 "같은 종이라도 생애사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인간이지만 어떤 이들을 아이를 출산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또 실제로 많이 낳아 기르는데 반해, 또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같은 사회, 같은 공동체 안에 거주하면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을 따른다. 빠른 생애사는 많은 자녀수, 소극적 양육 제공, 가치 다양성을 추구하며 느린 생애사는 적은 자녀 수, 적극적 양육 가치 횡일성을 추구하며 우리나라는 느린 생애사에 해당되며 이는 소수 아이 출산을 시작으로 높은 인구 밀도로 경쟁 지각 증가까지 이른다. 그래서 이런 우리의 한국 사회가 다양성과 행복을 지향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관문이 있는데 작가의 말로 인구 밀도 낮추기, 경쟁 밀도 낮추기, 역량 밀도 낮추기,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방향으로 네 가지를 말하고 있다.
이는 흩어져서 살고, 경쟁 인식을 줄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제언을 하고 있다.
네 번째로 미디어는 어떻게 다양성을 저해하는 가에 대한 주제로 미디어 다양성이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비추는 모습은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자체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미디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는데 영화 산업에서는 영화의 성평등 평가 방식인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로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최소 두 명 이상 등장하는가?, 여성 등장인물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여성 등장인물이 남성 이외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가?로 3가지를 다루며 벡델 테스트는 영화에서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상징적 소멸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징적 소멸은 특정 단이 표상되지 않아서 상징적으로 소멸하는 것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집단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장애인이 얼마나 등장하는가? 사회의 장애인의 비율보다 과소대표되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만 보게 되면 장애인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사회에는 다양하고 많은 장애인이 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상징적 소멸과 과소 대표 현상이 일어나며 이를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제작자는 다양성을 실천해야 하며 시청자는 차별적인 내용의 언급을 자제하며 미디어 문해력을 기를 필요가 있으며 확증 편향의 오류와 부작용 성찰이 필요하고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묻고 '설명 들을 권리' 주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은 왜 인간에게 혐오를 가르쳤나? 에 대한 주제이다. 혐오 감정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신적관념을 말한다. " 정결과 부정, 성과 속은 윤리를 형성하였다. 현대인은 윤리를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 사고한다. 그러나 원초적으로 윤리는 상당 부분 성과 속을 규정하는 데에서부터 자랐다. 정결함과 거룩함에 관한 규정을 어긴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다. 이런 식의 사고에서는 어딘가에 재양이 닥치면 분명히 누군가 큰 죄를 지어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쉽게 추측하기 마련이다. 그 '누군가'라는 공란을 채울 사람으로 구체적인 인물이나 집단이 지목되면 그는 공동체 구성원에게서 심한 경멸과 조소, 차별 대우를 받게 된다. ", 우리는 본능적으로 병균이나 오염에서 멀어지려고 하며 오염에서 회피 본능으로 혐오와 추방에 민감하다.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본능적 혐오 감정을 넘어서야 한다. "예수는 오늘날 거처가 정해지지 않은 이주 노동자 같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3년여 동안 공적인 삶을 살기 전 그는 오랫동안 목수로 일했다. 그리스어 '테크톤'은 보통 목수나 석공으로 번역되는데, 일용직 노동자 정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공적인 삶을 시작하기 전 예수가 바로 테크톤이었다. 30여 년간 사적인 삶을 살며 방랑하던 그 모습과 공적인 삶을 살 때에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내는 두 모습 사이에 단절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 모두를 관통하는 '방랑자의 삶', 난민'으로서의 삶이 체험이 예수의 삶 전반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사적인 삶의 방랑은 생계를 위한 것이지만 후자의 방랑은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사랑'으로 신과 하나가 되고 난민으로서 밑바닥 삶을 겪어본 예수의 근본 체험은 그가 사람을 볼 때 ㅅㅇ대방의 겉모습이 아닌 모습, 곧 내면의 진실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방랑하는 사람은 한 자리에 머물며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는 이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인간 이해의 깊이를 알려준다. 그런 까닭에 예수는 사람이 지닌 정결함과 거룩함이 그의 겉치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있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사람의 겉면인 인종, 신분, 성별 등의 위계질서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편견과 선입견을 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품은 내면 풍경이다.